유럽에 도착하기 전, 커피는 이미 이슬람 수피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신비한 음료였다. 기운을 북돋을 뿐 아니라, 정신을 맑게 해준다 하여 수도원에서는 영혼의 각성제로 쓰였다. 한 편, 술은 풍요와 욕망의 신으로 인도하는 마법의 음료였다. 무료한 일상의 껍데기에서 벗어나 욕망의 흥을 돋우거나 그마저도 망각하기 위한 최면제였다. 그래서 커피와 술은 그 본바탕이 달랐다.
커피는 홀로 마시는 음료이다. 둘 이상이 모이면 커피는 ‘나’라는 고유의 존재감을 더욱 뽐내게 한다. 그래서 고독히 마시는 커피가 멋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인가 있어 보인다. 커피를 앞에 놓고 고민하고, 생각에 빠진 모습은 자신의 빈 내면을 채우는 지성이 보인다. 그래서 커피는 빈 내면에 불을 지르고 찬물을 끼얹는 엄격한 사감 선생 같다. 이 마성에 끌려 커피 마니아는 홀로 커피를 즐기지 않는가!
반면, 술은 둘을 만든다. 홀로 마시는 술은 볼품없어 보인다. 그래서 술은 혼자보다 둘이 마실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술을 마시면 생각보다 감성이 열린다. 계산하고 따지던 일상이 무너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면서 없던 힘도 샘솟게 한다. 그리고 세상의 주인이 되게 한다. 술로 인해 나 외에 남은 모두 엑스트라가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세상사도 모두 발아래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술은 현실보다 어리숙한 이상의 나라로 인도하는 거짓 교주 같고, 희대의 사기꾼처럼 보인다.
사실, 커피와 술은 그 성분이 천양지차가 난다. 커피에는 각성제 역할을 하는 카페인이 있다. 한 잔의 커피에는 약 40~150밀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커피를 마시면 뇌 속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모든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깨운다. 이러한 신비의 힘은 정신을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고 이야기하게 자극한다. 이 커피의 힘은 커피가 있는 장소라면 어디서든지 발휘됐다. 중세 이집트 카이로와 영국 런던의 카페가 그에 대한 대표적 예이다. 이곳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은 평소보다 더 정치적이었다. 왕실은 이것에 심기가 불편하여, 반체제운동을 운운하며 커피숍과 생두 창고를 불태우고 금지령을 내렸었다. 이처럼 커피가 인간을 더 생각하게 하였다. 이 사실은 커피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뉴욕에는 커피스(coffice)가 있다. 이 신조어는 커피(Coffee)와 오피스(Office)의 합성어인데, 커피숍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고 일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술의 성분은 어떠한가? 술의 성분이 알코올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알코올은 우리 뇌를 마비시킨다. 알코올이 혈류를 따라 뇌에 도달하면 뇌의 혈류량은 점차 줄어들고 마비된다. 커피가 중추신경을 자극한다면 술은 중추신경을 무감각하게 한다. 그래서 술은 엉뚱한 말을 던지게 하고 절제되지 않는 우스운 행동을 하게 한다. 결국엔 술이 회복하지 못할 실수를 연발하게 하여 우리를 망가트리고, 정신도 몸도 잠들게 한다. 이렇게 술은 우리의 주의력과 판단력과 지각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일부 국가나, 학교, 종교 단체는 술을 엄격히 규제하거나 금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술의 특성 때문에 절실히 필요한 곳도 있다. 특별히 전장의 현장에서 군인에겐 언제나 술이 필요했다. 전쟁에서의 패전과 승리를 막론하고, 절망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위로와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현재도 이러한 술 문화는 여기저기 우리 주변 삶의 전쟁터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커피와 술은 본디 성분이 다르다. 그렇지만 커피와 술을 마신 이에게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 매우 재미있다. 커피의 카페인과 술의 알코올은 모두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커피와 술을 피하는 사람은 이 현상 때문일 것이다. 가슴이 요동치는 것이 생명력의 상징이라면, 커피와 술을 삶의 생명력과 엮어 풀어 보아도 될 법하다. 즉, 커피는 우리를 깨우기 위해, 술은 잠재우기 위해 가슴을 뛰게 한다. 술은 우리의 고된 일상의 상처를 싸매기 위한 마취제로서, 한순간의 일탈을 통해 달콤한 꿈을 꾸게 하는 수면제로서, 피곤을 풀게 하는 피로회복제가 되기위해 가슴을 뛰게한다. 그러나 자신을 망각게 하는 마성의 최면제도 될 수 있다. 반면, 커피는 주어진 삶의 희망을 위해 가슴을 뛰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돈과 물질에 의해 잃어버린 존재적 가치를 향해 뛰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는 망각보단 기억을 꿈보단 현실을 무존재보다 존재를 쾌락의 형이하학보단 이성의 형이상학적 인간을 위해 뜀박질을 일으킨다.
글: 로빈 윤의 커피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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